디에고 포를란은 우루과이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트라이커 중 한 명입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시작해 비야레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인테르 밀란까지.
그의 유럽 무대 커리어는 클럽마다 다른 등번호로 새롭게 시작되었습니다.
포를란 등번호를 추적하면 한 선수가 클럽에서 어떤 위상을 가졌는지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포를란의 클럽별, 국가대표 등번호를 하나씩 짚어보겠습니다.
디에고 포를란 등번호 – 커리어 전체 한눈에

사진 출처 (khan)
디에고 포를란은 1979년 5월 19일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파블로 포를란은 1966년과 1974년 월드컵에 출전한 우루과이 국가대표 선수였습니다.
외할아버지 후안 카를로스 코라소 역시 아르헨티나 인데펜디엔테 소속 선수로 뛰었습니다.
3대에 걸친 축구 가문에서 태어난 포를란은, 유럽 무대에서만 10년 넘게 활약했습니다.
역대 등번호 이력
포를란이 사용한 클럽 등번호를 시기 순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인데펜디엔테 (1997~2002): 18번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002~2004): 21번
• 비야레알 (2004~2007): 5번
•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2007~2011): 7번
• 인테르 밀란 (2011~2012): 9번
• 인테르나시오날 (2012~2014): 10번
• 세레소 오사카 (2014~2015): 10번
• 페냐롤 (2015~2016): 10번
포를란 등번호의 특이점은 클럽마다 배정된 숫자가 크게 달랐다는 점입니다.
수비수 포지션에 통용되는 5번을 비야레알에서 달았던 것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번호에 상관없이 득점을 쏟아낸 포를란의 경력은, 실력으로 기억되어야 할 선수의 표본이기도 합니다.
포를란 맨유 등번호 – 21번, 비운의 올드 트래포드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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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를란 맨유 등번호는 21번이었습니다.
2002년 1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합류한 포를란은 21번 유니폼을 받아 착용했고,
2004년 여름 비야레알로 이적하기 전까지 이 번호를 내내 유지했습니다.
맨유에서의 포를란은 솔직히 말해 시련의 연속이었습니다.
약 1,10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치르고 영입되었지만, 2시즌 동안 프리미어리그 출전 40경기에서 단 10골에 그쳤습니다.
영국 언론은 그에게 ‘디에고 포를론(Diego Forlorn, 쓸쓸한 디에고)’이라는 별명을 붙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맨유에서도 포를란의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2003년 12월 첼시와의 경기에서 후반전에만 두 골을 넣어 극적인 역전승을 이끌어낸 것이죠.
이후 21번은 이후 맨유에서 라파엘 다 실바, 에딘손 카바니, 안토니 등이 물려받았습니다.
포를란 비야레알 등번호 – 5번, 부활의 시작

사진 출처 (joongang)
포를란 비야레알 등번호는 5번이었습니다.
2004년 여름 비야레알에 합류한 포를란은, 일반적으로 센터백이 착용하는 5번을 배정받았습니다.
번호 자체만 보면 공격수와 어울리지 않는 숫자지만, 포를란은 그 번호를 달고 스페인 최고의 골잡이로 탈바꿈했습니다.
비야레알 1시즌 차(2004~05)에 포를란은 라리가 25경기에서 25골을 터뜨렸습니다.
이 기록은 그에게 첫 번째 피치치(라리가 득점왕) 트로피를 안겨줬습니다.
같은 시즌 아르세날의 티에리 앙리와 함께 유럽 골든슈를 공동 수상했습니다.
맨유에서 “포를론”으로 불렸던 선수가, 불과 한 시즌 만에 유럽 최고 득점왕 반열에 오른 것입니다.
비야레알에서 3시즌을 보내며 포를란은 총 128경기에 출전해 59골을 기록했습니다.
2005~06 시즌에는 비야레알이 UEFA 챔피언스리그 4강까지 진출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포를란 아틀레티코 등번호 – 7번, 전설이 완성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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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를란 아틀레티코 등번호는 7번이었습니다.
2007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합류한 포를란은, 7번을 달고 선수 생활 전체를 통틀어 가장 빛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4시즌 동안 196경기에서 96골을 터뜨렸고, 2008~09 시즌에는 라리가 33경기에서 32골을 기록했습니다.
그 덕에 두 번째 피치치와 유럽 골든슈를 받았죠.
35골이라는 시즌 전체 득점 기록은 아틀레티코 클럽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수치였습니다.
아틀레티코는 포를란이 합류하기 전까지 리그 중하위권을 맴돌던 팀이었습니다.
포를란의 첫 시즌(2007~08)에만 23골을 넣어 팀을 UEFA 챔피언스리그 무대로 이끌었죠.
2010년 UEFA 유로파리그 결승에서는 풀럼을 상대로 두 골을 터뜨려 우승컵을 들어올렸습니다.
그 결승 경기에서 포를란은 최우수 선수(MOM)에 선정됐습니다.
포를란 인테르 등번호 / 포를란 인터밀란 등번호 – 9번, 기대와 현실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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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를란 인테르 등번호는 9번이었습니다.
2011년 여름, 포를란은 약 500만 유로의 이적료로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인테르 밀란)에 합류했습니다.
사무엘 에투의 후임자로 영입된 포를란이 받은 번호는, 전통적인 스트라이커의 상징 9번이었습니다.
그러나 인테르에서의 포를란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습니다.
2011~12 시즌 세리에 A에서 한 시즌을 보내며 출전 기회 자체가 적었고, 팀 득점 1위는 디에고 밀리토가 차지했습니다.
결국 포를란은 단 한 시즌 만에 인테르를 떠났고, 브라질 인테르나시오날로 이적했습니다.
아틀레티코 7번만큼 상징적이지 않더라도, 인터밀란 유니폼을 입은 포를란은 팬들에게 하나의 컬렉션 아이템이 됩니다.
포를란 국대 등번호 – 21번에서 10번으로, 우루과이의 에이스

사진 출처 (yna)
포를란 국대 등번호는 21번과 10번, 두 숫자로 대별됩니다.
우루과이 국가대표로 처음 활약하던 시절, 포를란은 21번을 달았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도 21번으로 출전했고, 2007년 코파 아메리카까지 이 번호를 유지했습니다.
이후 포를란은 우루과이 국가대표팀의 10번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10번은 팀의 에이스, 경기를 이끄는 핵심 선수에게 돌아가는 번호입니다.
포를란이 10번을 단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은, 그의 인생 최고의 무대였습니다.
대회에서 5골을 터뜨려 공동 득점왕에 오르고, FIFA 골든볼(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했습니다.
우루과이를 4강까지 이끈 그 대회에서 포를란의 10번 유니폼은 전 세계 팬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됐습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3위 결정전 독일과의 경기에서 포를란의 발리슛은 대회 최고의 골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공식 은퇴를 앞두고도 최선을 다해
3위 결정전에서 패하며 우루과이의 최종 성적은 4위였지만,
포를란 개인의 퍼포먼스는 역대 월드컵 역사상 손꼽히는 수준이었습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10번으로 출전했으나,
이때는 이미 포를란의 전성기가 지난 뒤였고 두 경기 출전에 그쳤습니다.
2015년 3월, 포를란은 국가대표에서 공식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우루과이 대표팀 역사상 최다 출전 기록인 112경기, 36골을 남기고서였습니다.
글을 마치며
영상 출처 (bullyang)
포를란 등번호를 따라가다 보면 한 선수의 커리어가 고스란히 보입니다.
맨유 21번의 시절을 지나, 비야레알 5번으로 부활을 알린 그는 아틀레티코 7번으로 최고의 스트라이커가 되었습니다.
이후 우루과이 10번으로 월드컵 최고의 선수에까지 올랐죠.
등번호는 달랐지만 포를란의 발에서 나오는 골은 항상 같은 무게를 가졌습니다.
그것이 디에고 포를란을 시대를 넘어 기억하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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